
안녕하세요. 아이피렉스 특허법률사무소의 김용덕 변리사 입니다.
오늘은 발주처가 준 도면대로 금형을 제작한 업체도 디자인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특허법원 2025. 5. 22. 선고 2024나11051 판결은 용기 생산에 사용되는 금형의 제작·납품과 디자인권 간접침해, 과실 추정을 다룬 사건입니다.
금형은 재료를 일정한 모양으로 성형하기 위한 틀입니다. 완제품을 직접 판매하지 않은 업체라면 “나는 주문받은 틀만 만들었는데도 책임을 져야 하나요?”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그 금형이 무엇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지, 제작자가 어떤 사정을 알고 있었고 무엇을 확인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금형 제작자가 항소한 손해배상 사건
원고의 등록디자인은 ‘포장용 앰플 용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분쟁이 된 용기는 건강기능식품을 포장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피고는 금형 제작과 사출 생산업을 하는 사업자로서 발주처 C에게 해당 용기를 만드는 금형을 제작·납품하고 대금을 받았습니다. C는 그 금형을 사용하여 용기를 제조했습니다.
원고는 금형 제작자인 피고와 제1심 공동피고 C, D에게 공동으로 3,000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청구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4. 7. 5. 선고한 2022가합506157 판결에서 청구를 전부 받아들였습니다. 이번 특허법원 판결은 금형 제작자인 피고가 자신의 책임을 다투어 제기한 항소에 관한 판단입니다.
피고는 제공받은 도면대로 제작했을 뿐 등록디자인의 존재나 침해 가능성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제품 판매를 계획한 사람은 C이고 판매수익도 자신에게 귀속되지 않았으므로, 책임이 있더라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특허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완제품을 팔지 않아도 간접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판결이 적용한 디자인보호법 제114조는 등록디자인이나 그와 유사한 디자인의 물품을 생산하는 데에만 사용하는 물품을 사업으로 생산·양도하는 등의 행위를 디자인권 침해로 봅니다. 이를 간접침해라고 합니다. 완제품을 만드는 단계에 앞서 전용 생산수단을 공급하는 행위도 일정한 요건 아래 규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금형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금형 제작업체가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건에서는 만들어지는 용기가 등록디자인과 유사한지, 해당 금형이 그 용기의 생산에만 사용되는지, 제작·납품이 사업으로 이루어졌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등록디자인과 이 사건 용기를 비교하면 몸통부와 상단 손잡이부의 입체적인 형상, 기본적 형태가 공통됩니다. 법원은 이러한 지배적인 특징이 유사하여 전체적으로 같은 심미감을 준다고 보았습니다. 심미감은 외관을 보았을 때 느끼는 미적인 인상을 뜻합니다. 포장용 앰플 용기와 건강기능식품 포장용 용기는 용도와 기능도 유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금형의 쓰임새도 확인했습니다. 이 금형은 C의 요청에 따라 주문 제작되었고, 실제로 분쟁 용기를 만드는 데 쓰였습니다. 그 용기를 생산하는 것 외에 다른 경제적·상업적 용도가 없다고 보아 ‘생산에만 사용하는 물품’이라는 요건이 충족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가 금형 제작업자로서 납품대금을 받은 사정도 함께 고려했습니다.
디자인권을 몰랐다는 말만으로 부족했던 이유
다음 쟁점은 피고에게 고의나 과실이 있는지였습니다. 과실은 필요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잘못을 말합니다. 디자인보호법 제116조 제1항 제1문은 디자인권을 침해한 사람에게 그 침해행위에 관한 과실이 있다고 추정합니다. 추정은 반대 사정을 증명하여 뒤집을 수 있는 판단 방식입니다.
특허법원은 제114조에 따른 간접침해에도 이 과실 추정이 적용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뒤집으려면 디자인권의 존재를 알지 못한 것을 정당화할 사정이나, 자신이 만든 금형으로 생산되는 제품이 등록디자인의 보호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믿을 만한 사정 등을 주장하고 증명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등록된 디자인인 줄 몰랐습니다”라는 결론만 제시하는 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왜 몰랐는지, 어떤 확인을 했는지,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근거가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사정이 필요했습니다. 법원은 피고의 설명과 제출 자료를 모두 보아도 과실 추정이 뒤집히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샘플을 보고 점만 추가한 경위에 주목했습니다
법원이 중요하게 본 자료 중 하나는 분쟁 과정에서 피고 측이 보낸 내용증명이었습니다. 그 문서에는 납품 과정에서 C가 용기 샘플을 보여주었고, 피고가 제작 중인 금형과 샘플이 유사하다고 이야기했으며, C의 요청에 따라 금형에 점을 추가하고 납품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경위라면 피고가 적어도 금형이 타인의 디자인권을 침해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C의 요청대로 점을 찍는 정도의 변형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필요한 주의를 다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단순한 외관 수정과 권리침해 여부의 확인은 같은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피고의 영업 내용도 고려되었습니다. 피고는 2019. 3. 4.경 온라인 카페에 일회용 충진 밀폐용기 제작을 홍보하면서, 용기 디자인에 변화를 줄 수 있고 스케치를 받으면 용량에 맞게 디자인하여 제작한다는 취지로 안내했습니다. 법원은 피고가 이 분야의 금형 사출업자이자 디자인을 실시하는 사업자로서 디자인권 침해에 관한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피고가 등록디자인권의 존재를 파악하거나, 보호범위에 속하지 않는 용기를 만들 수 있는 금형을 생산하려고 노력했다고 볼 만한 사정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샘플과의 유사성을 알 수 있었던 경위, 전문적인 영업 내용, 권리 확인 노력이 드러나지 않은 점을 함께 보아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금형 대금만 받았어도 손해배상은 달랐습니다
법원은 피고의 금형 제작 행위와 C, D의 제품 판매 또는 금형 제작 관여 행위가 객관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아 공동불법행위책임을 인정했습니다. 공동불법행위는 여러 사람의 행위가 함께 손해 발생에 관련되어 공동으로 배상책임을 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피고는 다른 사람보다 관여한 정도가 작고 얻은 이익도 적다는 이유로 책임을 줄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가해자들 전체의 행위를 함께 평가하여 손해배상 범위를 정하고, 각 가해자가 그 금액 전부에 책임을 진다는 법리를 적용했습니다. 피고의 관여나 이익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사정만으로 원고에 대한 책임을 일부로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피고는 C, D와 공동하여 원고에게 3,000만 원과, 소장 부본이 피고에게 송달된 다음 날인 2022. 2. 4.부터 연 12%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원고가 선택적으로 주장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는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변리사 관점에서 보는 제작 의뢰의 확인 사항
첫째, 주문 제작을 받는 단계에서 도면과 샘플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사건처럼 비교할 샘플이 제시되고 유사성이 논의되었다면, 작은 점이나 장식을 추가하는 데 그치지 말고 관련 디자인권과 제품 전체의 외관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금형의 전용성과 권리 확인 과정을 구분하여 기록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을 생산하기 위한 금형인지, 다른 경제적·상업적 용도가 있는지, 관련 디자인을 어떤 범위에서 조사했는지는 서로 다른 판단 자료입니다. 검토 시점의 도면, 변경 요청, 검색·검토 결과를 함께 보관하면 실제로 기울인 주의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셋째, 발주처가 “문제없다”고 말했다는 사정이나 제작대금만 받았다는 사정에만 의존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 판결에서 책임을 정한 기준은 당사자 사이의 수익 배분만이 아니었습니다. 침해 제품의 생산에 전용되는 물품을 제공했는지와 침해 가능성에 대해 필요한 주의를 기울였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제작 지시와 권리 확인은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 판결은 모든 주문 제작에 같은 책임을 부과한 사건이 아닙니다. 등록디자인과 유사한 용기를 생산하는 전용 금형을 사업으로 제작·납품했고, 유사성을 알 수 있었던 사정과 권리 확인 노력의 부재가 함께 인정된 사건입니다. 제작 의뢰를 받을 때에는 “누가 디자인했는가”와 함께 “무엇을 만들며 어떤 권리를 확인했는가”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대상 판결: 특허법원 2025. 5. 22. 선고 2024나11051 판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