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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 달라도 상표등록 무효?

특허법원 2025허10516 판결을 통해 화장품과 식이보충제 사이의 경제적 견련성, KAHI 상표의 출처 혼동과 무효 사유를 살펴봅니다.

상품이 달라도 상표등록 무효?

안녕하세요. 아이피렉스 특허법률사무소의 김용덕 변리사 입니다.

오늘은 화장품과 식이보충제처럼 상품이 달라도 상표등록이 무효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특허법원 2026. 4. 23. 선고 2025허10516 판결은 ‘가히’ 화장품에 사용된 상표들과 식이보충제 등에 등록된 ‘KAHI’ 상표 사이의 출처 혼동을 다룬 사건입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 “우리는 다른 상품을 파니까 같은 이름을 써도 괜찮겠지요?”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상품이 유사한지와 소비자가 같은 회사의 상품으로 오인할지는 항상 같은 질문이 아닙니다. 이 판결은 그 차이를 실제 판매·광고 자료와 거래관계를 통해 보여줍니다.

화장품 상표와 식이보충제 상표의 충돌

피고는 영문 ‘KAHI’ 상표를 2021. 5. 18. 출원하여 2023. 12. 15. 등록결정을 받았고, 2024. 1. 4. 제2135127호로 등록했습니다. 지정상품은 단백질 식이보충제, 미용효과가 있는 식이보충제, 보충식품, 비타민을 주재료로 한 건강식품보충제 등 제5류의 15개 상품입니다. 지정상품은 그 상표를 사용하려고 등록한 상품의 범위를 말합니다.

원고는 그에 앞서 한글 ‘가히’와 영문 ‘KAHI’ 상표를 출원하고 등록한 권리자입니다. 2020년 4월경부터 이 상표들을 표시한 스틱밤, 선크림, 클렌징폼, 마스크 등 화장품류를 판매하고 광고해 왔습니다. 판결에서는 먼저 사용된 한글 상표를 제1 선사용상표, 영문 상표를 제2 선사용상표라고 부릅니다.

상품이 달라도 상표등록 무효?

이 사건 등록상표는 제2135127호, 제1 선사용상표는 제1656598호, 제2 선사용상표는 제1739232호입니다. 한글과 영문 선사용상표를 함께 표시한 사용 형태도 판단에 고려되었습니다.

원고는 피고의 등록상표에 무효 사유가 있다고 주장하며 특허심판원에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특허심판원은 2025. 7. 30. 2024당1198 사건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표장은 유사하지만 상품이 유사하지 않고, 상품 사이의 경제적 관련성도 밀접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이 이유였습니다.

원고는 이 심결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특허법원은 특허심판원과 달리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2호 후단의 무효 사유를 인정하여 심결을 취소했습니다. 심결은 특허심판원의 판단이고, 이번 판결은 그 판단의 적법성을 법원이 심사한 결과입니다.

핵심 쟁점은 소비자가 누구의 상품으로 보느냐입니다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2호 후단은 수요자를 기만할 염려가 있는 상표의 등록을 제한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소비자가 식이보충제 등을 보고 화장품 상표의 권리자와 같은 출처의 상품이라고 잘못 생각할 가능성이 문제 되었습니다. 여기서 출처는 상품을 제공하는 사업자가 누구인지를 뜻합니다.

법원은 먼저 선사용상표나 그 상품이 국내의 일반 거래에서 특정인의 상표 또는 상품으로 인식될 만큼 알려졌는지를 보았습니다. 반드시 전국적으로 유명한 저명상표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용기간, 사용방법, 거래실정 등을 종합하여 객관적으로 상당한 정도의 인식이 형성되었는지를 판단합니다.

그다음에는 상표의 동일·유사성, 구체적인 사용실태, 상품 사이의 경제적인 견련관계 등을 살펴봅니다. 경제적인 견련관계란 소비자가 두 상품의 사업상 출처를 연결해 생각할 수 있는 관련성을 말합니다. 상품이 서로 유사하지 않더라도, 같은 출처로 오인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이 규정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상표 인지도는 등록결정일을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이 규정의 판단 기준일은 문제 된 등록상표의 등록결정일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2023. 12. 15.이었습니다. 출원일인 2021. 5. 18.과 구별해야 합니다. 다른 무효 사유에 관한 판단 시점까지 모두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법원은 원고가 2020년 4월경부터 오프라인 매장, 온라인, TV 홈쇼핑 등 여러 유통망에서 선사용상품을 판매·광고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유명인을 활용한 광고뿐 아니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25편의 드라마에 상품을 노출한 간접광고와 블로거를 통한 광고도 살펴보았습니다.

판매 규모와 비용도 근거가 되었습니다. 선사용상품은 출시 후 약 1년 6개월 만에 1,000만 개 이상 판매되었고, 그 매출은 원고의 2021년 전체 매출 2,500억 원 가운데 약 80%를 차지했습니다. 2021년 선사용상품의 광고선전비는 약 496억 원이었습니다.

법원은 초기의 큰 광고비 지출만 따로 보지 않았습니다. 2021년 이후에도 판매와 광고가 계속되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하여, 형성된 인지도가 유지·확장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그 결과 늦어도 등록결정일 무렵에는 선사용상표들이나 선사용상품이 원고의 상표·상품으로 인식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상품이 유사하지 않아도 혼동할 수 있었던 이유

법원은 화장품과 식이보충제 등이 용도나 형상 등의 차이로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출처 혼동의 염려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첫째, 상표 자체의 유사성이 높았습니다. 등록상표 ‘KAHI’와 제2 선사용상표 ‘KAHI’는 글자체만 다르고 외관과 호칭이 실질적으로 같았습니다. 제1 선사용상표 ‘가히’와는 외관이 유사하지 않지만 호칭이 같았고, 영문 표기 방식과 한글·영문을 함께 사용한 사정까지 고려하여 유사성이 높다고 보았습니다.

둘째, 상품을 사용하는 목적에도 연결점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두 상품군이 건강의 유지·증진이나 미용을 목적으로 인체에 직접 적용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는 공통점에 주목했습니다. 바르는 화장품과 섭취하는 식품이라는 차이가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소비자가 두 상품을 연결해 볼 사정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실제 시장에서 생산과 유통의 경계가 겹치고 있었습니다. 등록결정 무렵에는 화장품 회사들이 식이보충제와 보충식품도 생산·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두 상품군이 인터넷 쇼핑몰이나 드럭스토어에서 함께 판매되고, 비타민·미네랄·단백질 같은 성분이 양쪽 상품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이 겹치면 소비자는 ‘KAHI’가 표시된 식이보충제를 보고 기존 화장품 브랜드가 새로 출시한 상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법원은 동일·유사한 상품에 상표를 사용한 경우에 못지않게 원고가 사용하는 상표로 오인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이 판단한 범위도 구별해야 합니다

특허법원은 제34조 제1항 제12호 후단에 해당하여 이 사건 등록상표의 등록이 무효로 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등록무효심판 청구를 기각했던 심결을 취소했습니다.

원고가 주장한 제7호·제9호·제11호·제13호 및 제35조 제1항의 사유는 더 나아가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판결을 “모든 무효 사유가 인정된 사건”이나 “부정한 목적의 출원이 인정된 사건”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결론을 이끈 쟁점은 수요자의 출처 오인·혼동 가능성이었습니다.

변리사 관점에서 보는 상표 출원 전략

첫째, 상표를 조사할 때 내 상품과 같은 상품류만 살피는 방식은 부족할 수 있습니다. 상품류는 등록을 위한 분류 체계입니다. 다른 상품류라 해도 같은 업체가 함께 취급하거나 소비자가 브랜드 확장으로 받아들이는 분야라면, 관련 상표와 거래실정을 함께 검토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먼저 사용한 상표를 보호하려면 인지도의 근거를 시점별로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매출자료, 광고비, 유통망, 광고 노출, 사용 화면 등을 보관하면 상표가 언제부터 누구의 상품표지로 인식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사건처럼 판매와 광고가 계속되었다는 자료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셋째, 상대 상표와 상품이 다르다는 설명만으로 검토를 끝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표장이 얼마나 가까운지, 시장에서 같은 회사가 두 상품을 취급하는지, 판매 채널과 소비 목적이 겹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는 모든 유명 상표가 모든 상품에서 보호된다는 뜻이 아니라, 해당 사건의 인지도와 거래관계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상표등록은 상품 목록 밖의 시장도 보아야 합니다

가히 판결은 상품이 유사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출처 혼동의 가능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상표의 사용과 등록을 검토할 때에는 이름과 상품의 분류뿐 아니라 소비자가 실제 시장에서 그 이름을 누구의 상품으로 받아들이는지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대상 판결: 특허법원 2026. 4. 23. 선고 2025허10516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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