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아이피렉스 특허법률사무소의 김용덕 변리사 입니다.
오늘은 호환용 리필 제품에 다른 회사의 모델번호를 표시한 경우, 그 표시가 상표권의 권리범위에 속하는지를 다룬 특허법원 판례를 살펴보겠습니다.
리필 봉투를 고르는 소비자에게는 ‘어느 회사가 만든 제품인가’와 함께 ‘우리 집 쓰레기통에 맞는가’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호환되는 모델을 알리려고 쓴 숫자가 다른 회사의 등록상표라면 어떻게 될까요?
특허법원 2026. 4. 30. 선고 2025허10434 판결은 ‘250 SERIES’라는 표시를 따로 떼어 보지 않고, 실제 포장과 거래 관행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폈습니다. 같은 숫자가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1. 사건 개요: 등록상표 ‘250’과 호환용 리필
이 사건은 권리범위확인 사건입니다. 권리범위확인심판은 특정 상품에 사용하는 표시가 등록상표로 보호되는 범위에 들어가는지 특허심판원에 판단을 구하는 절차입니다. 심판원의 판단을 ‘심결’이라고 합니다.
상표권자인 피고는 숫자 ‘250’으로 구성된 상표등록 제1359896호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지정상품, 즉 등록상표를 사용할 상품으로 정해 둔 목록에는 여러 종류의 쓰레기봉투와 ‘쓰레기통에 내장하여 사용하는 연속비닐봉투’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원고는 피고가 판매하는 쓰레기통에 호환되는 연속비닐봉투를 판매하면서 띠지에 ‘250 SERIES’를 표시했습니다. 연속비닐봉투는 쓰레기통 안에 넣어 두고 필요한 길이만큼 잘라 묶어 사용하는 리필 봉투입니다. 이 사건에서 판단을 구한 표시는 ‘250 SERIES’, 사용상품은 쓰레기통에 내장하는 연속비닐봉투였습니다.

등록상표와 확인대상표장은 위와 같습니다. 확인대상표장이란 이 사건에서 상표권의 범위에 들어가는지 판단을 구한 표시를 말합니다.
특허심판원은 2025. 5. 16. 2023당3227 심결에서 상표권자 측의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250 SERIES’가 상표로 사용되었고, 등록상표와 유사하며 상품도 동일·유사하다고 본 것입니다.
이에 리필 판매자인 원고가 심결취소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고는 ‘250’을 브랜드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호환되는 쓰레기통의 모델을 알려주기 위해 표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2. 핵심 쟁점: 닮았는지보다 먼저 볼 ‘상표적 사용’
상표의 기본 기능은 상품의 출처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출처란 생산지의 주소가 아니라, 소비자가 ‘이 상품은 어느 사업자의 상품이다’라고 인식하는 관계를 뜻합니다. 이처럼 브랜드를 알아보게 하는 방식으로 표시를 사용하는 것을 ‘상표적 사용’이라고 합니다.
특허법원은 확인대상표장이 등록상표의 권리범위에 속하려면 먼저 상표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를 판단할 때에는 표시와 상품의 관계, 표시 위치와 크기, 등록상표가 알려진 정도, 표시를 사용한 의도와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는 ‘250’이라는 숫자가 서로 같은지에 앞서, 소비자가 ‘250 SERIES’를 리필 봉투의 브랜드로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맞는 쓰레기통을 고르기 위한 정보로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했습니다.
3. 법원의 판단: 왜 호환 모델 안내로 보았을까요?
상표권자 자신이 숫자를 사용한 방식도 살폈습니다
피고는 쓰레기통에 M220, M250, M280 등의 모델명을 사용하고, 별도로 판매하는 리필 봉투에도 상품명과 모델고유번호를 함께 적었습니다. 예를 들어 M250 모델에 맞는 봉투에는 상품명 옆에 ‘250’을 표시하는 식이었습니다.
법원은 소비자가 이런 표시 중 상품명 부분을 출처표시로, 숫자 부분을 호환되는 쓰레기통의 모델번호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습니다. ‘250’은 간단한 세 자리 숫자로 식별력이 높다고 보기 어렵고, 그 숫자 자체가 리필 봉투의 출처를 나타내는 유명한 표지라는 증거도 부족했습니다.

상표권자 측 리필 봉투의 표시입니다. 상품명과 ‘250’이라는 숫자가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피고가 인터넷 홈페이지와 포장 박스에서 등록상표 표시인 ‘R’을 상품명에만 붙이고 ‘250’에는 붙이지 않은 점도 함께 고려되었습니다. 이는 ‘R’ 표시가 없으면 상표권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사건에서는 소비자가 각 표시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할지 살피는 하나의 사정이었습니다.
리필 판매자의 포장에서는 별도의 브랜드가 더 두드러졌습니다
법원은 원고 제품의 띠지 전체도 살폈습니다. 띠지 위쪽에는 ‘Best’와 ‘Goods’를 결합하여 도안화한 표시가 있고, 아래쪽에는 ‘250 SERIES’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위아래는 초록색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리필 판매자 측 제품과 띠지입니다. 위쪽의 도안화된 표시와 아래쪽의 ‘250 SERIES’가 서로 다른 위치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상표권자 측은 ‘BestGoods’가 ‘최고의 제품’이라는 품질 설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글자의 뜻만 보지 않았습니다. ‘B’를 엄지를 든 모습으로, ‘oo’를 눈과 얼굴 모양으로 도안화하고, 다른 문자와 색상·크기를 달리하여 위쪽 중앙에 배치한 구체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결과 외관상 식별력이 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250 SERIES’는 띠지 아래쪽에서도 아랫부분에 있었고, 상품 설명 문구와 같이 검정색으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SERIES’가 일련의 같은 종류를 뜻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소비자는 이를 별도의 브랜드보다 리필 봉투의 규격이나 용도를 알리는 표시로 이해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소비자에게 필요한 호환 정보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연속비닐봉투는 둘레가 쓰레기통에 맞아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판매자는 어떤 모델에 맞는 제품인지 알려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다른 호환 리필 판매업체들도 ‘220 호환형’, ‘250 리필’, ‘280 공용리필’처럼 모델고유번호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M250에는 둘레는 같지만 높이가 다른 여러 용량의 쓰레기통이 있었습니다. 원고는 ‘250 SERIES’ 아래에 ‘14, 16, 20, 21, 30L’처럼 호환되는 용량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 맥락에서 ‘250’은 봉투의 용량이 250L라는 뜻이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쓰레기통의 모델을 가리키는 정보였습니다.
피고는 모델번호 대신 쓰레기통의 둘레를 적으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소비자가 M250 모델의 둘레가 70cm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 스스로 모델번호로 제품을 구별하는 상황에서는 그 번호가 호환 제품을 가장 직관적으로 찾게 하는 정보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법원은 원고가 포장 박스에는 도안화된 브랜드만 표시하고 ‘250 SERIES’는 표시하지 않은 점도 고려했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원고가 소비자를 혼동시키려고 해당 표시를 썼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특허법원은 심판원의 판단과 달리 심결을 취소했습니다
특허법원은 ‘250 SERIES’가 이 사건의 구체적인 사용 방식에서는 상품의 출처를 표시하는 상표로 사용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등록상표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아, 반대 결론을 내린 특허심판원의 심결을 취소했습니다.
이는 등록상표 ‘250’ 자체를 무효로 한 판결이 아닙니다. 또한 호환 제품에 타인의 표장을 쓰는 모든 경우를 허용한 판단도 아닙니다. 이 사건의 확인대상표장과 연속비닐봉투, 실제 표시 방식에 관한 권리범위 판단이라는 점을 구분해 이해하셔야 합니다.
4. 변리사 관점에서 보는 실무상 시사점
이하 내용은 판결의 구체적인 사정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실무상 시사점입니다.
첫째, 호환 제품의 판매자는 자사 브랜드와 호환 정보를 소비자가 구별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사 브랜드가 어디에 얼마나 크게 보이는지, 상대방 모델번호가 어떤 설명과 함께 놓이는지, 전체 포장이 어떤 인상을 주는지를 함께 점검하셔야 합니다. ‘호환’이라는 단어 하나만 넣었다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숫자나 모델명을 상표로 관리하는 권리자는 등록증뿐 아니라 실제 사용 자료도 살펴보셔야 합니다. 광고와 포장에서 해당 숫자를 일관되게 호환 규격처럼 사용해 왔다면, 소비자가 그 숫자만으로 특정 사업자를 떠올리는지에 관한 쟁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상품의 출처표시로 인식된다는 자료가 왜 필요한지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셋째, 분쟁 자료는 표시만 잘라낸 이미지와 함께 전체 포장·상품 설명·판매 화면도 확보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이 판결에서 표시의 위치와 상대적인 크기, 다른 브랜드와의 관계, 거래 관행이 중요하게 다뤄졌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위한 가상 예시로, 포장 위쪽에 자사 브랜드를 분명히 적고 아래쪽에 ‘X100 모델 호환용’이라고 안내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실 수 있습니다. 반대로 ‘X100’을 포장 전면에 브랜드처럼 강조한다면 소비자가 받는 인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는 실제 사건의 사실관계가 아닌 설명용 예시이며, 표시 하나만으로 결론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5. 마무리: 소비자가 무엇으로 읽는지가 중요합니다
호환 모델번호와 등록상표가 겹치는 사건에서는 같은 문자가 쓰였다는 사실만큼, 그 문자가 실제로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지가 중요합니다. 2025허10434 판결은 상품의 출처를 알리는 브랜드와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알려주는 호환 정보의 차이를, 포장 전체와 거래 현실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본 사례입니다.
특허법원 2026. 4. 30. 선고 2025허10434 판결 · 권리범위확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