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아이피렉스 특허법률사무소의 김용덕 변리사 입니다.
오늘은 다른 회사와의 상표권 분쟁이 걱정되어 상표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 그 등록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대법원 2026. 3. 12. 선고 2024후10504 판결은 상표 불사용취소에서 ‘정당한 이유’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다룬 사건입니다.
내 상표를 쓰면 상대방에게 소송을 당할 수 있는데, 쓰지 않으면 내 등록이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이러한 고민만으로 상표를 사용하지 않은 책임을 면할 수 있는지, 제품 출시를 준비한 사정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문제 되었습니다.
사건 개요|화장품 상표를 등록하고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원고는 2014년부터 선사용상표를 이용해 귀금속류 액세서리를 판매해 왔습니다. 선사용상표는 뒤의 분쟁이 생기기 전부터 실제 영업에 사용해 온 상표를 뜻합니다. 한편 피고는 2017. 12. 6. 화장품 등을 지정상품으로 하는 상표들을 등록받았습니다. 지정상품은 상표등록에서 보호 대상으로 정한 상품입니다.
원고도 화장품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2019. 1. 16. 새 상표를 출원하고, 2019. 8. 26. 등록받았습니다. 이번 취소 사건의 대상은 이 화장품용 등록상표입니다. 원고가 앞서 액세서리 영업에 사용하던 상표 자체를 취소할 것인지 판단한 사건은 아닙니다.
원고는 2019. 10. 8. 피고 상표들에 등록을 무효로 할 사유가 있다며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했습니다. 이는 상대방 상표가 처음부터 등록될 수 없었던 것인지 심사해 달라는 절차입니다. 이후 심판과 소송을 거쳐 피고 상표들을 무효로 하는 심판원의 결정은 2023. 7. 27. 확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절차가 끝나기 전인 2022. 8. 29., 피고는 반대로 원고의 화장품용 등록상표에 대해 불사용취소심판을 청구했습니다. 상표를 일정 기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등록을 취소해 달라는 절차입니다. 취소를 요구한 범위는 기능성 화장품, 립스틱, 스킨로션, 핸드크림, 화장품 등 16개 지정상품이었습니다.
원고는 2022년 초부터 상표를 넣은 화장품 포장 디자인을 의뢰하고, 화장품책임판매업 등록을 마쳤습니다. 자신의 상표를 붙인 제품을 다른 업체가 제조하는 OEM 방식의 제조·유통사업도 협의하고 관련 관리자 교육도 수료했습니다. 실제 사용과 이러한 출시 준비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핵심 쟁점|상표를 안 쓴 데 ‘정당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대법원이 설명한 상표법 제119조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상표권자나 그로부터 상표 사용을 허락받은 사람이 정당한 이유 없이 심판청구일 전 계속하여 3년 이상 국내에서 등록상표를 지정상품에 사용하지 않았다면, 불사용취소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심판을 청구당한 쪽은 취소를 요구받은 지정상품 중 하나 이상에 대해 심판청구일 전 3년 이내에 국내에서 등록상표를 정당하게 사용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합니다. 사용하지 않았다면, 사용하지 못한 데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등록취소를 면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의 중심은 상표를 계속 사용할 마음이 있었는지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상표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걱정이 법에서 인정하는 불가피한 사유인지가 문제였습니다.
원심은 분쟁 위험과 출시 준비를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특허심판원은 피고의 취소심판청구를 받아들였으나, 원심인 특허법원 2024. 5. 9. 선고 2023허13971 판결은 원고에게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 그 심판원의 결정을 취소했습니다.
원심은 원고가 상표를 사용하면 피고 상표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고, 피고 상표들이 무효가 될지도 미리 확신하기 어려웠다고 보았습니다. 형사처벌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용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고, 소비자의 출처 혼동도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등록무효심판 청구와 제품 출시 준비에 나타난 원고의 사용 의사도 고려했습니다.
대법원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사유인지 살폈습니다
대법원은 정당한 이유가 인정되려면, 상표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객관적·외부적 사유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질병이나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항력, 법률상 규제, 판매금지 또는 수입제한 등으로 정상적인 거래를 할 수 없는 경우가 그 예입니다.
반면 영업이 잘되지 않거나 법적 분쟁이 염려된다는 사정은 원칙적으로 사업자 내부의 판단에 관련된 사유입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러한 이유만으로 등록취소를 면할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도 원고의 등록상표와 피고 상표들이 유사하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두 상표는 특별한 뜻이 없는 만들어 낸 말로 구성되어 의미를 비교하기 어렵고 외관도 유사하지 않았지만, 부르는 소리가 유사하여 상품의 출처를 오인하거나 혼동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상표들이 서로 다르므로 분쟁 걱정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아닙니다.
분쟁 우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 구체적인 이유
첫째, 원고의 상표는 심사절차를 거쳐 등록되어 있었고, 사업자는 다른 상표권의 존재와 내용을 확인하면서 자기 상표의 사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원고가 사용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면 그에 따른 결과도 원칙적으로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둘째, 실제로 침해 여부가 다투어진다면 법원의 객관적인 판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방 상표에 무효 사유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권리남용이라고 다투거나 별도의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권리남용 항변은 형식상 권리가 있더라도 그 행사를 허용해서는 안 되는 사정이 있다고 주장하는 방어 방법입니다.
셋째, 피고 상표들의 등록무효 절차에서 판단한 것은 그 상표들 자체의 등록 요건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 원고의 상표 사용이 침해라는 구체적인 판단을 받았다거나, 원고에게 상표를 사용하지 않아야 할 법적 의무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넷째, 이 사건에서는 불가항력으로 영업을 할 수 없었다거나 법률상 규제 때문에 화장품을 정상적으로 거래할 수 없었다고 볼 사정도 없었습니다. 대법원은 이런 사정들을 종합해 원고가 상표를 쓰지 않은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분쟁이 걱정된다는 이유만으로 사용하지 않는 상표를 계속 남겨 두면, 실제 사용이 없는 등록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의 상표 선택 기회를 넓히려는 불사용취소 제도의 취지에도 어긋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용 의사와 준비행위는 실제 사용과 구별됩니다
대법원은 출원할 때 사용 의사가 있었다는 사실과, 등록 후 사용하지 않은 데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은 별도로 평가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상표를 사용할 생각으로 출원했다고 해서 그 뒤의 불사용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피고 상표들에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한 행위는 상표법에서 말하는 상표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포장 디자인 의뢰, 판매업 등록, 제조·유통 협의와 교육 수료 같은 이 사건 준비행위도, 그 사정만으로 불사용의 정당한 이유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이 ‘정당한 이유’의 법리를 잘못 적용했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환송했습니다. 파기환송은 기존 판결을 깨뜨리고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이 판결은 원고가 상표를 사용해도 침해 책임이 없다고 선언한 판결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은 데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판단한 판결입니다.
변리사 관점의 실무상 시사점
첫째, 등록 후에는 출원 당시의 사업계획뿐 아니라 실제 사용 상황을 관리하셔야 합니다. 어떤 등록상표를 어떤 지정상품에 언제부터 국내에서 사용했는지, 상품·포장·거래서류 등 자료가 실제 사용과 연결되는지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상표권 분쟁 대응과 불사용취소 위험을 함께 검토하셔야 합니다. 상대방 상표의 무효를 다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 상표의 사용 공백까지 보호된다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침해 가능성, 사용금지 의무의 존재, 분쟁 해결 방안과 사용 계획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이 판결을 ‘취소를 막으려면 위험을 무릅쓰고 무조건 사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셔서는 안 됩니다. 출시 준비 자료와 실제 사용 자료를 구분하고, 사용이 어렵다면 원인이 단순한 우려인지 실제로 통제할 수 없는 장애인지 그 내용과 기간을 점검하셔야 합니다. 이는 판결을 바탕으로 한 실무상 검토 방향입니다.
마무리|분쟁 중에도 사용 여부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상표를 지키기 위해 분쟁에 대응하는 일과 등록상표를 실제로 사용하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이번 판결은 사용하려는 마음과 준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사용하지 못한 이유가 법에서 인정하는 불가피한 사유인지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