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아이피렉스 특허법률사무소의 김용덕 변리사 입니다.
오늘은 상표권자가 파산하면 상표 불사용취소를 피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대법원 2026. 3. 12. 선고 2024후11460 판결입니다. 법원은 파산 사실뿐 아니라 상표권을 관리하는 파산관재인의 사용 가능성도 살폈습니다.
상표 불사용취소는 등록상표를 일정 기간 사용하지 않았을 때 심판을 통해 등록을 취소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파산했다고 곧바로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상표를 사용하지 않은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였습니다.
사건 개요: 매수인과 담보권자의 다른 입장
한 합자회사가 2005. 11. 15. 상표등록을 받았습니다. 지정상품은 제29류의 콩, 고구마 등이었습니다. 지정상품은 등록상표를 사용할 상품의 범위를 뜻합니다. 이번 취소심판의 대상은 이 등록상표 한 건이었습니다.
이 회사는 회생절차 중인 2009. 9. 14. 법원의 허가를 받아 원고로부터 4억 원을 빌렸습니다. 같은 해 11. 23.에는 그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이 상표를 포함한 상표권·서비스표권 8건에 근질권을 설정해 주었습니다. 근질권은 일정 범위의 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권리에 설정하는 담보입니다. 8건은 담보로 제공한 권리의 범위입니다.
상표권자는 회생절차 폐지와 두 차례의 회생절차 개시신청 기각을 거쳐 스스로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파산선고일은 2016. 4. 25.이었습니다. 파산재산을 관리하고 처분하는 파산관재인도 선임되었습니다.
관재인은 2017년 7월 무렵 법원으로부터 매각허가를 받아 피고 회사에 이 상표권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피고는 권리이전 등록을 마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등록상표의 상표권자는 여전히 파산한 합자회사였습니다.
피고는 2022. 8. 10. 관재인을 상대로 불사용취소심판을 청구했습니다. 상표권을 매수한 피고가 심판청구인이 된 것입니다. 반면 돈을 빌려주고 담보권을 설정받은 원고는 상표의 이해관계인으로서 등록을 지키려는 피청구인 측에 참가했습니다.
특허심판원은 2024. 1. 24. 취소심판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원고는 심결취소소송을 제기하여 이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특허법원은 2024. 10. 31. 선고 2024허26 판결에서 불사용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고, 원고는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불사용취소의 기준은 청구 전 3년입니다
상표법 제119조 제1항 제3호는 상표권자나 사용을 허락받은 전용사용권자·통상사용권자 중 누구도 정당한 이유 없이 지정상품에 등록상표를 계속하여 3년 이상 국내에서 사용하지 않은 경우를 취소사유로 정합니다. 기간은 취소심판청구일을 기준으로 거슬러 살핍니다.
등록을 지키려는 피청구인은 심판청구와 관계된 지정상품 중 하나 이상에 대해 청구 전 3년 이내에 국내에서 상표를 정당하게 사용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합니다. 사용을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사용하지 않은 정당한 이유를 증명하면 취소를 면할 수 있습니다.
파산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대법원은 정당한 이유를 인정하려면 상표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객관적·외부적 요인 때문에 사용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되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법률상 판매금지나 국가의 수입제한처럼 정상적인 국내 거래를 막는 사정이 그 예입니다.
반대로 영업이 잘되지 않거나 법적 분쟁이 걱정된다는 사정은 통상 그 사람의 주관적·내부적 사유에 해당합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런 설명만으로 불사용취소를 피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기준입니다.
이 사건 등록상표는 청구 전 계속하여 3년 이상 국내에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원고는 파산절차 때문에 상표를 사용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회생절차 개시와 폐지, 두 차례 회생신청 기각을 거쳐 자진 파산한 경위를 살폈습니다. 이러한 경위에서 파산 사실만으로 외부의 불가피한 장애가 계속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불사용의 이유는 관재인을 기준으로 봅니다
파산선고 당시 회사의 재산은 파산절차에서 관리·처분할 재산인 파산재단에 속하며, 상표권의 관리·처분권한도 관재인에게 있습니다. 이 사건은 매수인이 이전등록을 마치지 않았으므로, 회사가 가진 상표권을 관리하는 주체도 관재인이었습니다.
문제가 된 청구 전 3년 동안에는 이미 파산절차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대법원은 그 기간의 불사용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상표권을 관리하는 관재인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파산한 회사의 영업 사정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채무자회생법 제486조에 따르면 관재인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채무자의 영업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 관재인이 허가를 받아 필요한 범위에서 영업을 계속했다면 등록상표를 지정상품에 사용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관재인이 그러한 허가신청을 통해 상표를 사용하려 했던 사정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관재인에게 상표 사용을 불가능하게 하는 다른 불가피한 사유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사용을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실제로 사용을 막은 장애를 함께 살핀 결과입니다.
대법원은 불사용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특허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여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파산한 회사의 모든 상표를 일괄 취소한 판단이 아니라, 이 사건 등록상표의 불사용취소 요건을 판단한 결론입니다.
변리사 관점: 상표 거래와 담보의 점검 사항
실무에서는 상표등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과 불사용취소 위험이 낮다는 판단을 구분해야 합니다. 상표를 매수하거나 담보로 받기 전에는 실제로 어느 상품에 누가 사용했는지, 그 시기를 보여 주는 자료가 있는지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상품에 상표가 표시된 모습, 거래내역, 광고 자료 등을 날짜와 상품별로 정리하면 사용관계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만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사용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 된 등록상표와 지정상품의 사용을 보여 주는 자료인지 살펴야 합니다.
파산절차에서 상표권을 인수한다면 매매계약뿐 아니라 이전등록의 진행 상태와 현재 관리권한도 확인해야 합니다. 이 사건처럼 매수 후에도 등록상표의 권리자가 그대로인 상황에서는 상표를 관리하는 주체와 사용관계를 점검하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담보권자도 상표의 등록번호나 권리 수만 확인하고 점검을 끝내기 어렵습니다. 상표 사용이 끊기면 불사용취소 위험이 담보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에서 담보권자가 등록취소를 다툰 상황은 이러한 점검 필요성을 보여 줍니다.
파산 중인 상표라면 사용을 막는 구체적인 사유와 그 사유가 지속된 기간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재인이 법원에 영업계속 허가를 신청했다는 사실만으로 상표 사용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허가와 실제 사용, 불가피한 사용 불가능 사유는 각각 구분하여 살펴야 합니다.
마무리
이번 판결은 파산이라는 절차의 이름보다 상표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어떤 사용 가능성과 장애가 있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관재인을 기준으로 정당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