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아이피렉스 특허법률사무소의 김용덕 변리사 입니다.
오늘은 오래된 가방을 다른 모양의 가방이나 지갑으로 리폼하면 상표권 침해가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대법원 2026. 2. 26. 선고 2024다311181 판결은 소유자의 개인적 사용을 위한 리폼과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행위를 구별한 사건입니다.
수선업체가 돈을 받고 작업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상표권 침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고객의 주문을 받았다는 형식만으로 모든 리폼이 허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 무엇을 위해 작업을 결정했고, 완성품이 어떤 경로로 사용되는지가 중요합니다.
1. 사건 개요: 고객의 가방을 고쳐 돌려준 업체
상표권자인 원고는 가방·지갑 등에 사용되는 두 등록상표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피고는 가방과 지갑의 수선·제작업자로서, 2017년경부터 2021년경까지 고객이 맡긴 가방의 원단과 금속 부품 등을 이용해 크기·형태·기능 등이 다른 가방과 지갑을 만들어 그 고객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고객은 매장에 전시된 샘플이나 홈페이지의 사진에서 원하는 제품을 고르거나,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직접 제시했습니다. 업체는 원래 가방의 크기 등에 따라 가능한 디자인을 설명하고, 가방을 해체한 뒤 재사용할 원단과 부품을 재단하여 작업했습니다.
원고는 우선 상표권 침해를 이유로 작업 금지와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서는, 널리 알려진 상표의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하는 부정경쟁행위라는 주장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선 판단을 구하는 청구를 주위적 청구, 그에 대비해 뒤이어 판단을 구하는 청구를 예비적 청구라고 합니다.
2. 원심은 왜 상표권 침해라고 보았을까요?
원심인 특허법원은 2024. 10. 28. 선고 2023나11283 판결에서 상표권 침해를 인정했습니다. 원래 가방을 해체하고 부품을 잘라 형태와 기능 등이 크게 달라진 새로운 제품을 만들었으며, 업체가 독립적으로 영업하면서 이를 고객에게 인도했다는 점을 보았습니다.
원심은 리폼 제품 자체에 교환가치가 있고 독립된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침해행위 금지 청구와 손해배상 청구 일부를 받아들였습니다.
2024년 항소심 판단과 그 뒤 선고된 대법원 판단은 구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번 글은 아래와 같이 대법원이 원심 판단을 어떻게 검토했는지 설명합니다.
3. 대법원: 개인적 사용인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대법원은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이 상표가 표시된 상품을 거래시장에 유통시키는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상표는 소비자가 어느 사업자의 상품인지 구별하게 해 주는 표시이고, 상표법은 이러한 거래 과정에서 사업자의 신용과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소유자가 개인적으로 쓰기 위해 가방을 리폼하고, 그 결과물도 시장에 유통되지 않은 채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된다면, 그 과정의 상표 표시 등은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외형이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이 판단을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은 전문 업체에 돈을 주고 맡겼을 때에도 원칙적으로 같은 법리가 적용된다고 보았습니다. 리폼에는 기술과 노동이 필요하므로 본인이 직접 바꾸는 경우만 허용하면, 소유자가 자기 물건을 고쳐 쓸 자유가 실제로 보장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업체가 받는 돈의 성격도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개인용 리폼에서는 작업 전후의 소유권이 계속 고객에게 있고, 업체가 받는 돈은 새로운 제품을 판매한 값보다는 리폼 서비스를 제공한 값에 가깝습니다. 작업 결과 역시 그 고객의 개인적 사용 영역으로 돌아갑니다.
4. 상표권 소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
상표권 소진은 상표권자가 국내에서 상표가 붙은 상품을 적법하게 양도하면, 그 개별 상품에 대해서는 상표권의 통제가 원칙적으로 미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상품 소유자가 이를 사용하거나 처분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다만 원래 제품과의 동일성이 없어질 만큼 실질적으로 새 제품을 생산한 경우에는 이 소진 원칙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그 경우에도 개인적으로만 사용되고 시장에 유통되지 않는다면, 별도로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원래 가방과 얼마나 달라졌는가”와 “완성품이 거래시장에 제공되는가”는 함께 검토해야 할 문제입니다. 대법원은 소유권 행사의 자유뿐 아니라 개성의 표현, 제품 수명 연장과 자원 순환의 가치도 고려했습니다.
5. 고객 주문이어도 침해가 될 수 있는 경우
대법원은 예외도 분명히 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고객의 개인용 주문처럼 보이더라도, 실질적으로 업체가 리폼 과정을 지배·주도하며 완성품을 자기 제품처럼 생산·판매하여 시장에 유통시켰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여 침해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주문의 경위와 내용, 제품의 목적·형태·개수를 최종적으로 결정한 사람, 업체가 받은 돈의 성격, 재료의 출처와 비중, 작업 전후의 소유관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합니다. 어느 한 요소만으로 결론이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특별한 사정을 입증할 책임은 침해를 주장하는 상표권자에게 있습니다.
또한 고객이 개인적으로 쓰려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유통시키려는 목적으로 주문하는 등 상표권 침해행위를 할 것을 업체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데도 작업에 관여했다면, 업체도 공동으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6. 판결의 결론: 일부 파기환송입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업체가 소유자들의 개인적 사용을 위한 요청에 따라 리폼한 뒤 제품을 돌려준 이상, 원칙적으로 상표의 사용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원심은 앞서 설명한 특별한 사정이나 침해행위 관여 여부 등을 살피지 않은 채 상표권 침해를 인정한 잘못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원심판결 중 주위적 청구에 관하여 피고가 패소한 부분과, 이에 대응하는 예비적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파기환송은 상급심이 원심의 판단을 깨고 해당 부분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돌려보내는 절차입니다.
따라서 이 판결을 모든 리폼 영업이 허용된다거나, 부정경쟁행위 주장까지 최종적으로 모두 배척되었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대법원이 정한 기준과 다시 살펴야 할 범위를 함께 이해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7. 변리사 관점의 실무상 시사점
리폼을 의뢰하거나 제공할 때에는 주문서에 적힌 명칭뿐 아니라 실제 거래 구조를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누가 소유한 제품인지, 누가 형태와 수량을 결정했는지, 완성품을 누가 어떤 용도로 가져가는지, 대금이 작업비인지 제품 판매대금인지 구체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명을 위한 가상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고객이 자기 가방을 맡겨 본인이 쓸 지갑으로 바꾼 뒤 돌려받는 경우와, 업체가 가방을 사들여 여러 지갑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는 검토의 출발점이 다릅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계약의 이름보다 재료 조달, 소유관계, 제작 결정과 유통 과정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개인용”이라는 확인 문구 하나만으로 판단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주문·상담 내용, 작업 전후 사진, 재료와 완성품의 인수인계, 비용 내역 등을 남기면 실제 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판매 목적의 주문임을 알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 점도 따로 검토하셔야 합니다.
마무리: 모양의 변화와 거래의 실질을 함께 보세요
2024다311181 판결은 가방 리폼의 상표권 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 개인적 사용과 거래시장 유통을 구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리폼의 범위가 크거나 업체가 작업비를 받았다는 사정만으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소유자의 사용을 돕는 거래인지 완성품을 생산·판매하는 거래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